#1
토요일 연습을 마치고 누나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잠이 안왔다. 안나 가발다 단편 소설집을 들고 갔었는데 두어편 읽고 나니 갑자기 소설이 쓰고싶어졌다. 왜, '밥 딜런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나도 노래를 할 수 있을것 같다는 자신이 생겼다' 라는 지미 헨드릭스의 얘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야깃거리를 생각하면서 방을 왔다갔다 한참 서성이다가 이내 싫증이 나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손이 근질근질해서 기타를 치고싶어졌는데 누나네 집에는 기타가 없었다. 자주 가는 김천에는 에피폰 카지노를 한대 갖다 뒀는데 태백에도 기타를 한대 갖다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훈련소 4주 갔다오는동안 가장 절실했던건 슈크림빵, 그다음은 기타였던 기억. 그리고 문득 한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연애를 제외하면, 내가 해본 것 중에 기타가 제일 재밌구나.
#2
스페드 페스티벌 3전. 전날 빗속에서 3번 스핀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굉장히 조심하면서 달렸다. 덕분에 예선 기록이 2전보다 무려 1.5초나 늦어졌다. 신참 선수들은 모두 '돌아온 탕아' 인지라 폴포지션 근처에 모여 있었다. 덕분에 나는최후미 그리드에서 결승을 시작.
rpm 3~4000 에 클러치 미트. 느낌이 좋다 싶더니 시작과 동시에 1대 추월. 헤어핀에서 앞 선수들이 엉키는 틈을 타서 또 두어대 추월. 자이언트 코너 돌기 전까지 1랩을 돌기 전에 3~4대정도를 추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느낀점.
타임어택따위는 재미가 없구나. 레이싱이란게 재미있는거였다.
최후미에서 시작해서 뒤에 여러대를 달고 한바퀴를 돌았다. 뒤의 12번 선수가 바로 뒤에서 똥침을 놓으면서 날 추월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두번째 바퀴 진입하려는데 인코스를 잡고 있던 바로 앞의 10번 R-Stars(류시원이 만든 그팀) 선수 차가 미끄러지면서 이상하게 거동한다. 피한다고 아웃으로 빠지려고 했는데 그만 코너 절반쯤 이탈.
돌아오려고 핸들을 꺽었는데... 그 틈을 타서 12번 선수가 내 오른쪽으로 추월하는걸 그대로 받아 버렸다. 12번은 잠시 휘청이다 저만큼 달아나고... 나는 한참을 뒤처졌다. "제기랄.. 아냐, 다시 잡을수 있을꺼야." 힘내서 달리려는데 들썩이는 본넷이 보인다. 추돌의 영향으로 본넷 링크가 부서졌나보다. 일단 달려보자 하고 2번코너 돌아나기 직전.... 덜컹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앞이 하나도 안보인다. 본넷이 열려서 앞 유리를 완전히 가린것.
피트인 해서 차를 대충 손봤다. 전방 측면으로 받은지라 범퍼가 왼쪽으로 밀리면서 본넷 링크가 끊어진거였다. 범퍼하고 본넷이야 원래 갈려고 했던거였으니 뭐 그렇다 치고, 그나마 앞유리가 안깨져서 다행이었다. 집까지 안락하게(?) 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구동계통 이상은 없이 외장때문에 피트로 돌아오니 참 마음이 답답했다. 본넷은 테이프를 발라서 고정시켰지만 다시 차를 끌고 나가면 쎄라토 결승 종료시간 내에 나머지 18바퀴를 다 돌 수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리타이어..
피트에서 써킷을 신나게 달리는 선수들을 보니 절실하게 느껴진게 한가지 있었다.
리타이어 한 사람들의 마음이 다 이런거였겠지? 뭐 이걸 느낀걸로도 나름 재미있었다. (김씨 말에 따르면 도련님 귀족스포츠 하듯) 별 의욕도 없이 시작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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